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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2회]Gungnir |
날짜 : 2014-05-30 00:45 | 조회 : 601 / 추천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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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공포] 해꽃이
천천히 물길을 가르며 목적지로 항해하는 병원선 한 척.
선내 스피커를 통해 선장의 얇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훅, 훅. 아아. 선내에 알립니다. 본 병원선 현 위치, 매야도 남방 3마일~ 추서도 도착예정시간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각 부서 주지하시고, 입항 대신에 닻 놓고 보트 내려서 들어갈 겁니다. 물때가 안 맞아서 항구에 배를 못 대요. 갑판장 조타실 좀 올라오시고. " 군청 소속 병원선은 의사와 간호사의 의료팀과 갑판, 기관의 두 부서로 이루어진 운항팀을 태우고 한 달을 주기로 군청 관할 바다의 의료 사각지대를 구석구석 다니며 찾아가는 진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오늘의 첫 진료지는 추서도. 마을어업을 하며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 인구의 노령화와 인구 손실로 인해 현재는 조업이 예전만 못한 평범한 낙도(落島)였다. 입항 30분 전 방송이 나오자 병원선 수석 간호사인 유진은 조타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배의 간호사와 의사들 모두 돈보다도 소명으로 이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업무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모든 준비는 진작에 마쳐놓고, 조타실에 가서 커피도 한 잔씩 돌리고 섬에 들어갈 의료팀도 논의할 겸, 선박 특유의 좁은 계단을 밟는 걸음이 꽤 능숙해보였다. " 수고하십니다~ 추서도 벌써 다 왔네요, 여기 할머니들 파스 엄청 좋아하시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붙여드려야 해? 통원치료를 하셔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 아이 참 " " 오, 우리 수간호사 유진 씨. 뭐하러 올라왔어. 의료팀도 바쁠텐데. " " 벌써 끝났어요. 이제 다들 일이 손에 익어서.. " " 응, 우리 팀 잘 하는 건 내가 잘 알지. 일하는 맛 난다니까. " " 커피 드시겠어요 선장님? " " 오, 땡큐. 일항사요, 우리 유진 씨가 커피 한 잔 타주신다는데 얻어마실 용의 있어요? " " 아우, 최고죠. " 일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힐 일이 없으니 좁고 바쁜 이 병원선 일도 견딜만 했다. 유진은 기분이 제법 괜찮아서 커피를 타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 15분 전 방송 슬슬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항해사들끼리 잡담이 들렸다. " 굳이 안 해도 다 시계 보고 알건데 뭐.. 커피 다 마시고나면 그때 방송하지. " 유진이 본인 것까지 포함해서 조타실에 있는 여러 선원들을 위해 커피를 들고 왔다. 배가 좌우로 아주 살짝 흔들려서 커피잔도 덩달아 달그락거렸다. ㅡ 선장이 해도 탁자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곤 다시 조타실로 들어갔다. " 유진 씨 잘 마셨어! " " 감사해요. " " 근데 유진 씨 고향이 매야도 아냐? 방금 지나왔잖아. " " 매야도 맞아요. " " 거기 지금도 사람 살아? " " 아무도 안 산데요. " " 희한하네~ 유진 씨 어릴 때 매야도 분교 다녔을 것 같은데. 맞아? " " 아시네요, 매야도 분교 다녔어요. " " 학교도 있던 섬이 어쩌다가 이제 무인도가 되버렸을까? 딴섬도 아니고.. 꽤 컸는데. " " .... " 해꽃이 때문이에요,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유진은 마음 속으로 집어삼켰다. 이 일을 아는 사람 모두 노환으로 돌아가셨을테고, 그때의 매야도 사람들이 아니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죽을 때까지 마음 속에 담아두고 가야 할 매야도의 비화였다. ' 해꽃이.. ' 유진은 조타실 옆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앞쪽의 추서도 뒤로 시선을 돌리니 이제는 무인도가 되어버린 매야도가 멀찍이 보였다. 너무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ㅡ " 한 점 묵으봐라 참말로, 아 어데 나쁜긴가 싶어가 그라나? " 이웃 할머니들이 또 우리 집에 와서 우리 할머니한테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 아이, 낸 회를 못 묵는다캐도! " 우리 할머니는 섬사람답지 않게 회를 잘 안 드셨다. 먹지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즐기진 않으셨는데, 이번엔 아예 먹기 싫은 모양인지 못 먹는다는 말까지 둘러대셨다. " 소인배다 진짜로, 이거 바라, 요래 한 점 묵으면 되지 그기 어립나? " 꼴딱 소리가 나도록 한 점을 삼키신 할머니 한 분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 야아, 온다. " 시작이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다른 할머니들도 몇 점 입에 허겁지겁 쑤셔넣고는 먼저 먹은 할머니와 함께 몸을 약간 떨었다. " 햐아아, 직인다. " 할머니들의 시선이 흐리멍텅했다. 그 중엔 검은자가 서로 마주보는 할머니도 있었다. 다들 정상적인 사람으론 보이지 않을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나는 '환각'이란 단어를 몰랐다. 지금에야 떠올리길, 할머니들은 환각에 빠져있었다. " 듭다아아 " 할머니들이 남 보는 건 아랑곳 않고 남의 집 마당에 웃옷 아랫옷 속옷까지 훌러덩 벗어놓곤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알몸이 되어 해안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 바라.. 이리 좋은거를.. " 할머니들이 그 지경에 되면서까지 칭찬하는 회 한 접시. 우리 할머니는 환각에 취한 할머니들이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회를 내다버렸다. " 어데 정신나간 년처럼 흉보일려고 이거를 먹어. 남들 욕한다. 유진이 니는 함부로 먹지마라. " " 안 먹어예 할매. " " 니 이거 먼지는 아나? " " 해꽃이. " " 우째 알긴 아네. 아니까 됐다. 먹는 거 아이다. " '해꼬시', '해꽃이', '해깔' 저마다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틀렸지만 그 외양은 해삼과 비슷했다. 다만 해삼과 다른 점은 눈깔이 붙어있어서 그 머리쪽과 꼬리쪽이 제대로 구분이 된다는 점이었는데, 꼭 사람 눈깔만한 눈깔이 머리에 덩그러니 달려있는데다 얼마나 눈알을 굴려대는지, 해안가에 물이 빠져서 잠겨있던 바위가 드러나면 눈알이 다닥다닥 붙어서 저마다 상하좌우를 뱅글뱅글 쳐다보는게 몹시 흉물스러웠다. 다른 섬과 어업권 문제로 엄청나게 사이가 안 좋은지라 왕래가 없는데다 섬 주위에 암초가 여럿이라 우리 마을 뱃사람들이 아니면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해안으로 들어올 일도 없었기에 우리 매야도 해안의 '해꽃이'는 오로지 매야도만의 생물이었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바위에 붙어있기 시작한 이 눈알 달린 괴상한 바닷생물을 먹기 시작한 건 한 달 남짓 된 것 같았다. 그간 사람 눈깔을 하고서 사람을 바로 쳐다보니 입맛이 떨어져 아무도 먹질 않았는데, 막상 썰어놓으니 해삼 비슷한게 시험 삼아 누군가 먹어본 것이 시작이 되어 결국은 물질하는 할매들 사이에 해꽃이 회가 퍼져있었다. 할배들은 배 나가거나 바깥일하러 나가고, 할매들은 집에 있는 할매가 아니면 거진 잠수해서 해삼, 전복, 소라 같은 걸 따는 물질을 했는데 그 일이 어디 보통 힘든 일인가. 기력이 다 빠질 정도로 오전 내 물질을 하고 나서 참을 먹을 적에 자양강장제로 해삼 하나씩 슬슬 썰어먹던 것이 그렇게 어느 날의 시도 이후로 해꽃이로 바뀐 것이다. 해꽃이라는 생물은 생긴 것도 기괴하지만 먹고 난 뒤의 신체 반응도 기괴했다. 사람이 꼭 해꽃이처럼 눈깔을 바로 못 보고 뱅글뱅글 돌리면서, 발음이 어눌해졌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옷을 훌러덩 벗고 꼭 해안으로 와서 눕게 되는데, 아마 해꽃이를 먹으면 몸에서 열이 엄청 나는 모양이었다. 그 열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열을 내보내기 위해 옷을 벗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할매들이 물질하다 말고, 혹은 멀쩡히 마을에 모여있다가도 해꽃이 하나만 썰어먹으면 해안에 온통 발가벗고 다닥다다닥 붙어서 뒹구는데, TV 속에서만 바라보던 바다코끼리떼처럼 느껴졌다. 정말 짐승떼라도 되는 것처럼 '우우~'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걸 보노라면 같은 사람인 게 이상해지면서 기분이 나쁜 쪽으로 묘했다. ㅡ " 학교 가나~ " 어제까지만 해도 해안에 발가벗고 누워서 개처럼 앓던 동네 할머니가 그렇게 멀쩡해지니 꼭 이게 비정상이고 해꽃이에 취해있는 게 정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 예에. " " 그래 공부는 안 힘들고? " " 예? 헤헤.. 네, 재밌어예.. " " 와 안 힘들어, 힘들지. 잠깐만 기다리라. 줄 기 있어가 그란다. " 나는 동네 할머니가 주신다는 게 뭔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 자아- 유진아, 하나 쭈무봐라! 해삼도 아닌기 산삼보다 낫다! " 할머니가 대문 밖으로 나오며 들고온 건 해꽃이 반토막이었다. 이미 죽어서 운동을 멈춘 눈깔과 내 눈이 코 앞에서 마주쳤다. " 으, 저 이거 안 먹어요. " " 와 안 묵어, 어른이 주시는데! " 할머니가 이상했다. 해꽃이를 먹은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되는 걸까, 꼭 남에게도 먹이려 들었다, 집요할 정도로. " 저 학교 가요!! 안녕히 계세요! " 나는 이웃 할머니가 더 이상해지기 전에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다행히 어린 나는 기운이 쌩쌩해서 그런 상황이 오면 빨리 피할 수 있었다. ㅡ " 학교 다녀왔습니다... " 학교 마치고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낯선 인기척이 많은 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어안이 벙벙해서 우리 집 마루를 살피니 할머니들이 다 옷을 벗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우리 할머니 혼자 계실텐데, 할머니는? 할머니는? 할머니를 찾아 내 눈이 꼭 해꽃이처럼 뱅글뱅글 돌며 할머니를 찾았다. 해꽃이 할매들 사이에 우리 할머니가 양팔이 잡힌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 쳐묵으모 좋다고 웃음이 실실 나온다고 하는데 왜 안 묵어 우우우후후 " " 묵으라 묵으~ " 어눌한 말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손이 할머니의 아가리를 억지로 틀어벌렸다. " 이이익, 안 뭉은다 , 안 뭉응다, 켁 " 안 먹으려고 반항하는 할머니의 입으로 다른 손이 해꽃이를 들이밀었다. 우저적, 으적, 으적, 수많은 손이 할머니를 붙잡고, 입을 벌리고, 턱을 억지로 오락가락해대며 해꽃이를 씹게 했다. 할머니는 반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럿을 이기기엔 힘 없는 아낙에 불과했다. 나는 할머니를 구하고자 책가방을 마당에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할머니들 사이로 뚫고가려 했지만 국민학생인 내 완력으론 해꽃이 할매들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무리였다. 들어간다한들 저 손들을 다 치울 수도 없을 것이다. 들어가긴 커녕 오히려 할매들 사이에 끼인 채 안타깝게 우리 할머니를 쳐다보는 내 눈과, 해꽃이를 결국 억지로 삼킨 우리 할머니의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눈이 순간 슬퍼보이더니 이내 통제를 잃고 흐트러졌다. " 오올..치.. 온다.. 온다. " 다른 할매가 중얼거리고, 우리 할머니가 귀찮다는듯 옷을 훌러덩 벗어 마당에 이리저리 집어던졌다. 할머니들이 해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글우글, 바글바글.. 나는 그 할머니들 뒤를 쫓으며 '할매! 할매!' 하며 우리 할머니를 잡으려고 달려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콱 붙잡았다. 설마 해꽃이를 먹이는 손일까 싶어 오금이 순간 저렸지만, 할매가 아니라 이장님이었다. " 함부로 따라갈 생각 하지말그라. 니도 저래 되니까. " " 이장님, 놔주세요, 저 할매 찾아야되요, 데리고 와야 되요 " " 아직까진 괜찮다. 한 번 묵은걸론 안 돌아삐니까 염려마라. 제정신 찾아서 집에 들어오면 문 꼭 걸어잠궈라. 우리 섬이 망할낀갑다.. 사람이 짐승 노릇을 하고 있으니.. " " 이장님, 어떡해요, 우리 할매 어떡해요.. " " 죽은 것도 아닌데 울지마라. 아직까진 사람 구실할 때니까 너거 할매는 다신 저기 보내지마라. 그래도 지금은 안 된다. 니 저거 따라갔다가 쪽수에 밀리면 니도 저 꼬라지 되는기다. 저 우라질 년들은 곧 세상 뜨면 그만이라 저런 꼴 보여도 되지만 니는 아직 학생이고 어린아다. 니만큼은 절대 저렇게 되선 안 된다. 알겠나. " " 이장님.. " " 괜찮다 아가. 괜찮다. " 나는 이장님의 품 속에서 펑펑 울었다. 외부와 지리적, 사회적으로 격리된 이 섬에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현상들이 몹시 무서웠다. ㅡ " 유진아. 학교 가그로 일나라~.. "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살며시 떴다. 얼마나 울면서 어제 혼자 잠들었는지 눈곱이 잔뜩 끼어 눈을 바로 뜨기 힘들었다. " 할매.. " 눈곱을 다 떼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옷을 단정히 입은 할머니가 몹시 반갑고, 어제 옷을 다 벗은 알몸이 되어 해안가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할머니의 모습이 겹치자 한편으론 두려웠다. " 혹시 배고프면 이거 묵고. 고구매 좀 삶았다. " 가방에 고구마를 정성스레 넣어주시는 할머니가 비로소 우리 할머니라고 느껴지자 나는 할머니를 꽈안 안았다. " 할매, 다시는 그거 묵지마세요. " 할머니도 그런 나를 안아주셨다. " 하모. " 나는 걱정없이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언뜻 '유진이 할매야~' 하는 걸 들은 것 같았지만 늦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가야했다. 할머니가 다신 안 드실거니까, 안심하며 나는 바보같이 길을 나섰다. '유진이 할매야,' 소리에 우리 할머니 군침이 꼴딱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ㅡ [ 해양기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경남서부앞바다,서부먼바다, 동부앞바다,동부먼바다, 남해연안앞바다에 이 시각부로 풍랑특보가 발효되었습니다. 기타 피해가 예상되는바 소중한 인명과 재산에 피해가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 . . ] 라디오 소리가 울리는 교실. 창밖으론 바람이 엄청나게 거세게 불어 창문이 떨며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무실을 다녀오시더니 우리들에게 말했다. " 야들아. 오늘 학교 지금 마칠거니까 다 집에 가라. 함부로 바닷가 가지 말고, 큰일난데이. " 우리는 엄청난 바람소리가 무서웠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재빨리 책가방을 챙겼다. 빨리 집에 가야지.. ㅡ 이럴수가, " 할매! 할머니! " 없어, " 할머니! " 나는 미친듯이 집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할머니는 어디에도 계시질 않았다. " 할머니! 어디 계세요! " 마당으로 다시 달려오다가 나는 뭔가 말캉거리는 걸 밟았다. 화들짝 놀라 발 아래를 쳐다보니 말캉거리는 물체의 정체는 익숙한 생물이었다. 해꽃이.. ㅡ " 할머니! 할머니! " 마치 사람이 우는 것처럼 우우우우 하는 바람 소리가 엄청났다. 나는 강하게 부는 앞바람을 맞으며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할머니를 찾기 위한 일념으로 해안가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비바람이 거세서 국민학생인 나는 내 몸 가누는 것도 어려웠다. 우우우, 바람 소리 속에 다른 소리가 섞여있다. 간신히 눈을 떠서 멀찍이서 해안을 쳐다보니, 바다코끼리떼처럼 다닥다닥 모여있는 할매들이 보였다. 엄청난 파도와, 바람, 비.. " 할매! 할매! " 나는 할머니를 부르짖으며 해안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곧 걸음을 멈췄다. 압도적인 공포가 마음을 급습했다. 뭐지, 저 높은 파도는.. 해일이었다. " 할매, 할매, "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서서 울기만 했다. 해일이 굉장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집채를 집어삼킬만한 높이였다. " 할매 " 할매들은 해일이 오는 줄도 모르고 발가벗은 채로 해안을 뒹굴거렸다. " 할머니!- 안 돼요! "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어린 아이의 외침이 들릴리 없었다. 콰쾅, 해일이 해안을 덮쳤다. " 안 돼애애애! " 흰 거품과 함께 바닷물이 내 발 앞까지 밀려오더니, 그 뒤엔 갈고리처럼 지상의 모든 걸 쓸어내려가버렸다. " ..... " 거짓말처럼 해안에 아무 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모두 사라져버렸다. 할매 모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한참 뒤에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ㅡ " 이 빌어먹을 세상, " 노모와 아내를 동시에 잃은 이장님이 우리 매야도 선박들이 쓰려고 타놓은 기름을 바다에 콸콸 뿌리기 시작했다. " 죽어라, 이 개 같은 것들아. " 여기 저기 붙어있던 해꽃이들이 꿈틀거리며 바위에서 떨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미처 도망가지 못 하고 기름을 뒤집어 쓴 해꽃이는 뿌직,뿌직, 토를 하며 뒤집어졌다. 해면이 기름 범벅이 되자 해꽃이들은 수면 밖으로 기어나오지 못 했다. 매야도 사람들 모두 자신의 어머니 아니면 아내, 동생, 친구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렸다. 마을이 송두리째 통곡의 섬이 되버리고, 삶을 잃어버리자 그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매야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가장 큰 원흉인 해꽃이가 희생양이 되었다. 이장님처럼 기름을 바다에 버려버리거나, 일일이 잡아서 터트려죽이거나, 자주 보이던 해꽃이가 열이면 열 모조리 매야도 사람들의 손에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 ... " 나도 발 밑에 있던 기름이 닿아 괴로워하는 해꽃이 한 마리를 발로 콰직 소리가 나도록 밟았다. 찌익찍, 토가 나오며 해꽃이가 부들거렸다. 매야도는 죽음의 섬이 되었다. 우리 모두 이 섬을 떠나고 싶어했다. ㅡ 그 뒤 경찰이 당연히 수사에 착수했지만,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건 그야말로 실종이었고, '해꽃이' 때문이라고 이장님이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 많던 해꽃이가 죄다 죽어없어진 통에 '눈 달린 해삼' 이야기는 미친 놈의 얘기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거짓말 아니라예' 맞장구치며 조사 담당관을 닥달했지만 조사관은 '아, 알았습니다. 실종이네요. 이런 일은 처음인데.. 조사는 더 해봐야알겠고, 이장님. 바다에 기름이 잔뜩 버려진 것 같던데요.' 하며 결국은 사람 죽은 조사가 아니라 해양오염 조사를 하더니만 이장님을 잡아가버렸다. 그렇게 마을이 통째로 와해되어버렸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를 잃은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시설로 보내졌다. 할머니를 보살피지 못 했던 죄책감에,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간호사가 되었고.. 이렇게 병원선에 타고 있다. 할머니들을 진료하고 있으면 그 날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으니까. 그 기억을 떠올리자 나는 마음 한 켠이 너무 죄어왔다. 할머니를 지키지 못 했던 내 모습이 너무 미웠다. " 자 닻 놓는 작업 끝났으니까 보트 팀 출발하세요, 특이 환자 있으면 보트에 동승해서 선내 의료실로 오도록 하시고, 매번 하는 거니까 더 이상 말 안 해도 알지요. " 선내 방송이 울리자 괴로운 회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잊자, 환자 보러 가야되는데 내가 우울해선 안돼. " 유진 씨~ 얼른 타세요~ " 먼저 탄 이등 항해사와 의사 선생님, 막내 간호사가 나를 불러댔다. " 네에! " 나는 보트 위로 올라탔다. " 내립니다. " 갑판장이 크레인을 조종하자 보트가 바다에 내려졌다. ㅡ " 발 조심해요 " " 네에. " 먼저 내린 동료들의 염려 속에, 손을 내밀어준 막내 간호사 손을 잡고 선착장에 올라섰다. 이등 항해사가 능숙하게 보트를 매어두고 있었다. 잠시 추서도의 경치를 구경할 새도 없이, 다급한 얼굴로 할아버지 한 분이 뛰어오고 계셨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할아버지께 인사를 건넸다. " 할아버지~~ 뛰어오시다가 더 다쳐요~ 어디 아프세요~ " 할아버지는 숨에 차서 소리쳤다. " 헉헉, 지가 아픈게 아니고예, 섬 반대편에 가보이소, 큰일났어예! 지금 해양경찰 헬기도 다른데 가있어서 요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우짜면 좋습니꺼! " 선생님들 밖에 없십니더, 빨리요! " " 천천히 말씀을 해보세요, 어떤 상황이에요 " 그러자 할아버지가 울부짖으며 대답했다. " 몰라예, 몰라예, 이게 뭔지 모르겠어, 할매들 여럿이 더위를 잡쉈는가 발가벗고 해안에 드러누워있는데, 다들 사람 말귀를 못 알아먹고 눈까리가 요래 되가지고, 이상해예, 뭘 잘못 먹었는 것 같애, 살리주이소, 아이고 사람 좀 살리주이소! " 나를 제외한 다른 선원들이 빨리 가보자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나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비틀거렸다. 해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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