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과 정보
▶ 유용한 정보
- ㆍ[정보] 소검소마 tp삭제 퍼섭후기 [6]
- ㆍ[정보] 재련캐릭 규율 대미지가 독공이 아니라 물마공으로 ... [5]
- ㆍ[정보] 시즌말에 확인받은 얼녹 공식 답변
- ㆍ[정보] 115 세트 장비 옵션 정리표 (중던발 유출) [4]
- ㆍ[정보] 시즌말 즐겜을 위한 규율 및 특수 오브젝트 간단... [2]
Gungnir | 날짜 : 2014-05-10 01:30 | 조회 : 233 / 추천 : 8 |
---|---|---|
[잡담] [공포?] 위험한 가계 ( 좀 깁니다 )여보, 식칼을 찾기 위해 싱크대 서랍 뒤지지 마. 식칼은 내가 숨겨놨어. 정말 써야겠다면 가르쳐줄게. 내가 누워 자는 침대 밑을 봐. 문득 오늘은 당신이 날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춰놓은 거야. 내가 깨기 전에 당신이 들어오고, 오늘의 당신 심정이 내 추측대로라면 침대 밑의 식칼을 사용해도 좋아. 어쩔 수 없잖아. 오늘 피한다고 해서 앞으로의 수많은 날을 모두 피해갈 수는 없잖아. 피곤해. 식칼을 찾겠다고 온 부엌을 달그락거릴까봐, 피곤해 죽겠는데 그것 때문에 잠을 깰까봐 알려주는 거야. 손 베지 않도록 조심해. 침대 밑 가운데께에서 머리쪽으로 30센티미터쯤 위에 있어. 되도록이면 심장을 찔러줘. 너무 깊이 찌르지는 마. 아프니까. 심장은 10센티미터만 찔러도 죽는대. 사내는 메모를 냉동실 문에 붙였다. 그로써 아내의 수고는 많이 덜어질 것이다. 짜증도 예방한 셈이었다. 물이 끓고 있는데 멸치를 건져내야 할 조리가 없다든지, 부침을 하기 위해 달걀을 깨놓았는데 휘저을 거품기 작은 것이 없다든지 하는 일들.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도대체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는 주방기구만큼 화를 돋우는 것도 또 없을 것이다. 사내가 숨겨놓은 장소를 고백했기 때문에 아내는 생각난 김에 내처 일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었다. 살인은 살의가 일었을 때 해치워야 한다. 더구나 남편을 없애는 일이잖은가. 보지 않겠다는 신문을 계속 집어넣는 배달원을 어느 날 새벽 마침내 조우했는데 이제 중학교 일학년쯤 되는 아이여서 아무 말 않고 놓아주는 것과는 사정이 다른 일이다. 죽이고 싶어졌을 때 죽여버리는 게 나은 일인 것이다. 어쩌면 사내의 친절한 배려와 엄살 때문에 아내는 한 번 더 봐주고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긴 했다. 사내의 노림수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피해자가 지정한 절차를 곧이곧대로 수행할 멍청한 가해자는 없을 것이었다. 살(殺)이 예감되는 날, 그러나 제발 편히 쉬고 싶은 날, 사내는 자신을 어서 죽여달라는 쪽지 한 장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튿날 사내는 침대 위에서 아직 살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한 모금 빼먹고는 냉장고를 살폈다. 푸른색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내가 붙여놓은 것이었다. 사내는 그것을 떼어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전자레인지에 넣어놓은 삼치구에 데우고,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미역국 덜어놓았어. 사랑해. 아내는 그 정도의 유머감각은 있는 여자였다. 속으로는 '이러다 피해망상증 되는 거 아냐?' 하며 은근히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고, '진짜 알아챈 건가?' 하며 조바심을 낼지라도 천연덕스레 얼마든지 눙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오전 열시. 되도록 나와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아내가 가 있을 만한 곳은 많았다. 5단지에 있는 친정이나 7단지의 친구네에 가 있지 않으면 상가의 화실에서 데생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입체감 넘치는 아그리파의 모사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옆모습을 열심히 더듬는 대학원생 화실 선생의 노란 머리를 힐끗 보며 아직도 새파란 영계의 눈길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신의 매력에 안도하며 남편이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 또하나 이유를 상기하다가는 결연히 살부(殺夫) 의지를 가다듬고 있을 것이었다. 아내의 삼치구이가 맛있긴 할 터였지만 사내는 식사 생각이 없었다. 팬에 튀겨 소금을 뿌린 것보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생선은 그릴에서 구워 고춧가루와 참기름과 잘게 썬 파라 듬뿍 들어간 양념간장을 바른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십년 전부터 해온 그 생선조리법은 아내에게 이미 버릇처럼 굳어져 있었다. 사내가 좋아하던 생선구이를 마다한다 해서 그 삼치구이에까지 아내의 음모가 개재돼 있으리라 의심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속이 좋지 않았고 기왕 늦은 것, 열두시에 맞춰 출판사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드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내가 간악하고 집요하다 해도 사내가 가장 즐겨하는 양념구이에까지 암수를 쓸 거라곤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냉동된 생선을 찬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다시 준비된 가성소다액에 적신 후 준비된 양념장을 고루고루 잘 발라 굽는다. 그러면 남편은 허겁지겁 지각 조반을 들면서 식욕을 돋우는 붉은 양념이 발라져 있긴 해도 기실은 양잿물에 적신 생선구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른 채 삼켜대다 이내 식탁 밑을 구를 것이다? 사내는 식사 대신 머그컵에 정수기의 온수를 받아 팩으로 포장된 현미녹차를 넣어 거실의 소파로 가 앉았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는 6월의 햇살은 미량이면서도 사람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직원 둘이 있는 그의 출판사는 지난밤 과음한 사장의 늦은 출근을 이해할 것이었다. 사내는 간밤 술이 너무 과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냉엄히 반성했다. 주량 조절을 그렇게밖에 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공격을 유도해도 유분수였다. 허술한 방비는 상대의 준비가 미처 안 되어 있어도 습격 의욕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만취는 인사불성의 수면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그 집에 사는 한 사내는 그렇게 잠들어서는 아니 되었다. 오감이 모두 잠들어도 각성의 줄 하나쯤은 팽팽한 긴장으로 남겨서 적의 내습을 자명으로 알릴 수 있도록 해두어야 했다. 피곤한 일이다. 밖에서 얻은 피로를 내려놓고 안락히 쉬어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해야 할 자신의 집, 자신의 거처에서 살얼음판을 딛듯 죽고 죽이는 음모에 온 정신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었다. 사내가 아내의 명백한 살의를 알아차린 것이 벌써 일 년 전 일이었다. 그 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의 자명 시스템을 항상 예민하게 벼려놓고 불철주야 경계에 만전을 기했던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보아야 했다. 일 년 전 그 일만 해도 그랬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아내의 흉악한 음모를 황천에나 가서야 알았을 뻔 했다. 그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땀을 흠뻑 흘리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다. 그가 옷을 다 벗고 욕탕이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그의 뒷덜미에 대고 외치는 것이었다. "여보! 애도 목욕시켜야 하니까 실내 좀 데워줘요!" 화장실의 환풍기가 돌아가면 온수의 뜨거운 수증기도 금세 빠져나가게 마련이고 한겨울에는 아이의 체온이 감당 못 할 만큼 화장실 내부가 춥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고,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꼭 전기난로를 켜두어야 했다. 그는 난로를 가져다 욕조 위의 벽에 박힌 옷걸이 장식에 걸었다. 감전의 우려가 있는 전기난로를 물이 튀는 바닥에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화장실에 난로를 걸 만한 못이라고는 욕조 위의 옷걸이 장식밖에 없었다. 사내는 아이가 오기 전엔 따끈한 온수욕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머리만 내밀고 온몸을 탕 속에집어넣은 채로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데려오기 전에 아이 목욕 준비를 위해 화장실로 들어왔다. 탕에 받은 온수의 온도를 점검하고, 또 욕실장에서 아이 목욕수건과 베이비샴푸 등을 꺼내려 했다. 난로를 걸어놓은 머리 위의 못장식 옆에 있던 욕실장을 여닫는 아내의 수선이 위태로워 사내는 몸을 일으켰고,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행여나 싶어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아직 욕조 안에 두 발을 담그고 있던 그때, 욕실장에서 샴푸와 목욕수건과 목욕 후 입힐 가운을 꺼내던 아내의 몸이 미끄러지면서 균형을 유지하려던 아내가 난로를 건드린 모양이었고, 누가 일부러 건들지 않는 한 결코 떨어질 리 없으리라 여겼던 난로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찔한 순간이었다. 몸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사내의 머리 위로 떨어졌을 것이고, 사내의 머리를 가격한 난로가 욕조의 가득한 물로 떨어질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공포영화나 범죄영화가 단골로 보여주던 살해 신을 본 게 몇 차례던가. 헤어드라이어가 욕조로 떨어지거나 소형 TV가 물에 빠져 부르르 떨며 감전돼 죽는 장면들을 보며, 놀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비슷한 에피소드를 자꾸 거듭하는 영화들을 한심히 생각하곤 했던 그 일이 사내에게 일어났던 것이었다. 난로는 물 속에 바로 곤두박질하지는 않았다. 욕조에 걸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흔들거리고 있었고, 난로의 한쪽 다리는 이미 물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난로의 급강하를 제어한 것은 콘센트에 꽂힌 플러그였다. 코드가 짧았던 것이었다. 그는 날쌘 날쌘 순발력으로 욕조를 벗어나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플러그는 무거운 난로의 무게를 오래 감당하지는 못했다. 플러그가 뽑히고 난로가 물 속에 잠수하자마자 푸지직하는 담금질 소리와 함께 급히 발생한 수증기가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사내는 위기일발의 순간이 지나갔음을 깨달았고, 코드가 이십 센티미터만 더 길었어도 감전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는 목욕물에 튀겨지는 신세를 모면케 해준 신에게 감사했다. "당신 죽을 뻔한 거에요?" 아내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번해버렸다. 사내는 그때만 해도 아내의 얼굴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실망감 때문에 질려하는 기색이 된 것을 알지 못했다. 누구의 과실치사도 아니고, 침입자에 의한 살인도 아니고, 대단한 연기력과 심오한 표정관리가 필요할 실수사로 간단히 치부될 수 있는 정황이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119나 112로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그만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요." 사내는 자신보다 더 놀란 아내를 위로했고 상황은 그렇게 종료됐다. 그러나 사내는 며칠 동안 아찔했던 그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 사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었다. 사내는 어느 날 아내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난로를 다시 못 장식에 걸고 실험을 시도했다. 사내보다 작은 키의 아내가 욕실장에서 목욕용품들을 꺼내며 거치적거리는 난로를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리 여러 방법으로 난로를 건드려보고 밀어보고 했어도 못 장식을 벗어나지 않는데 사내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난로 밑으로 들어가서 어깨로 들면 쉽게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면, 난로 밑동을 손으로 슬쩍 들어주기만 하면 난로의 손잡이는 못 장식을 이탈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도 아닌 살해의도가 명백한 능동적 고의로 보아야 하는데 아내가 왜 그래야 하며 어떻게 그런 의심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난로가 떨어진 것은 기정한 불변의 사실이었다. 감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일이긴 하였어도 내부 깊은 곳에서 무색무취의 훈증향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음을 말릴 수 없었다. 의심이었다. 끔찍한 일이지만 아내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난로를 욕조에 밀어넣은 것이고, 그것은 충동적으로 일어났다기보다는 치밀한 계획하에 대단히 확고한 결의에 의해 일어난 일로 여겨졌다. 난로가 욕조로 들어가는 상황에 다소 억지가 있다 하더라도, 또 남편이 자신의 범행을 빤히 보고 있다 하더라도, 단 십여 초 정도면 끝나는 일인데 어쩌랴 싶은 모진 마음을 새기고 있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의는 담대했을지언정 실행에 있어서는 치밀하지 못하였고, 코드의 길이가 간발의 차로 짧아 모의를 미수에 그치게 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시간으로 이뤄진 세상의 모든 기간은 둘로 나눌 수가 있고, 그것은 전반과 후반 혹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구분한다. 미수에 그친 그 사건은 사내에게 주어진 생의 기간을 양분할 수 있는 기준이기에 충분했다. 사내에게 주어진 인생의 전반기는 그로써 수명을 다했고, 그 나눔의 기준은 연령이 아니라 달고 쓰고 즐겁고 괴로운 생의 내용이었다. 그의 전반기는 쓰고 괴롭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즐거운 시기였고, 그의 삼십대 후반은 두 시기를 나누는 분수령이었다. 그가 그토록 비관하여 두 시기를 구별하였던 것은 아내의 모의를 알아차린 이후 곧바로 혹독하고 신산스런 시절이 시작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래도 제법 달콤했던 생의 전반기는 지나갔다. 태어났고, 추억의 유년들이 마음속의 동굴 벽에 크레파스의 환한 채색화를 그려주었고, 에피소드 많은 학창 시절이 있었고, 연애로 인해 심장은 자주 뜨거웠었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고, 아이를 낳아 사내에게 주어진 종족유지의 사명을 일부나마 완수했고, 그 기간 내내 피와 힘은 젊음으로 용솟음쳤다. 전반기의 대강은 그러했고, 결국은 끝이 났다. 그리고 끊임없디 부대끼고 고통받아야 할 후반기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내는 변명이 불가능한 살해기도였음이 명백하다 단정했지만 곧바로 아내를 추궁하지 못했다. 사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 건 너무 느닷없었다. "거 말이야. 저번에 목욕할 때 난로 떨어진 일 말야. 그거 당신이 일부러 그런 거였지?" "이유? 날 죽이기 위한 거겠지. 그렇잖아?" "왜 죽이느냐구? 내가 미웠나보지. 죽이고 싶도록. 아니면 내가 귀찮아졌거나 거추장스러워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데 내가 소용이 없었겠지. 별거나 이혼을 해도 되지만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단 판단이었겠지?" 그런 말들로 아내를 갑작스런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런 물증이나 논증거리도 없이 무턱대고 말을 꺼냈을 때의 혼란을 겪느니 그녀의 의도대로 그냥 이 지상에서 사라져주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사내는 잠자코 숙고했다. 너무나 명백한 아내의 살해기도에 걸맞는 명백한 살해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는 왜 사내를 죽이려 했던 것일까. 사내는 오랜 시간 그것에 대해 추리했다. 과연 왜? 사내는 그들의 생활반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들의 가장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평면도가 떠올랐다. 그는 머릿속의 마우스포인터를 끌어다 안방 위에 놓고 클릭했다. 안방은 무촌간의 부부 사이를 같은 공간에 지속적으로 살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유일한 곳이어야 했다. 그곳의 침대에서 그는 아내와 섹스했다. 충식한 섹스는 활력의 원천이어야 하고 사랑을 북돋울 쾌락의 발전실이어야 했지만 그들의 섹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고, 어쩌면 그 섹스야말로 살인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섹스는 비행기들의 공중 급유와 유사했다. 미국의 폭격기가 체공시간을 연장하고자 할 때 중간지점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급유기를 만나 잠자리 교미하듯 기체의 어깨 부분에 잇는 급유프로브에 급유봉을 결합한 채 일정 시간을 지체하면 급유가 완료되고, 그런 연후에 배불러진 폭격기는 분쟁 지역에 개입하기 위한 장도를 떠날 수 있었다. 물론 사내의 급유봉이 급유기의 그것마냥 길다거나, 배고픈 전투기들이 기갈을 면할 수 있도록 늘 빵빵하게 많은 양의 연료를 싣고 다닌다는 뜻은 아니었다. 늘 변함없는 체위, 요동을 친다기 보다는 삽입한 채 사색에 잠겼나 싶을 정도로 정숙한 동작, 사정이 끝난 후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작전 지역과 모함으로 각각 떠나고 마는 그들의 업무적인 태도들을 볼 때 비행기의 공중 급유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부부간 살을 맞댄 교류였으면서 그들의 그것은 너무 사무적이며 또한 작전적이었다. 사내는 화장실로 가 급유봉의 잔여 흔적을 세척하긴 했지만 성공적인 급유를 기꺼워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포기할 때도 되었건만 불쾌감과 짜증이 남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사내에게 섹스는 노쇠가 진행되어 더 이상 육욕이 생성되지 않을 그날까지 몇 회분의 수량이 남았을까 하는 계수의 개념으로 인식돼 있었다. 사내는 일에 임하는 자신이 그럴진대 아내는 또 감회가 어떠할 것인가를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굳이 이따위 의례를 치르지 않으면 부부일 수 없는 건가, 섹스리스 부부도 많다잖은가, 남편의 타액고 정액이 내 몸에 묻는 모욕을 왜 정기적으로 감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어쩜 아내는 그리 수고랄 것 없는 성행위를 모욕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섹스 기능은 점차 퇴화되고 있었다. 피차에 기쁨과 열기가 없는 교류는 그 횟수와 시간이 갈수록 줄어갔다. 라마르크의 율불요에 관한 직관은 사내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는 듯했다. 멀리서 오는 맹수를 미리 보기 위해 목을 빼다보니, 나뭇잎이나 풀을 뜯기 위해 목을 늘어뜨리다보니 목이 길어진 기린과 반대로, 사용시간이 짧은 그의 성기는 부쩍 작아진 듯했고, 배 위에서의 체류시간도 갈수록 간단해지고 있었다.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는 체액을 분비하지 못했고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베이비오일을 상용해야 했다. 변하지 않은 건 그들이 일을 치르고 난 후 나누는 한두 마디의 의례적인 말뿐이었다. "좋았어?" "응, 좋았어." 사용시간의 과소함으로 인한 퇴행도 큰 이유일 것이었지만 사내의 내분비는 뭔가에 의해 교란되고 있기도 했다. 아내는 단순명료해져버린 침실의 정황에 대한 책임을 모두 사내에게 지우고, 그리하여 그것을 살해의 명분으로 삼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과연 아내는 쾌락도 정열도 없이 의무와 의례로만 남은 그의 멋쩍은 공중 급유를 멈추게 해주려고 살해를 결심했을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아내는 색욕으로부터 삶의 활기를 삼으려 하는 여자는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불행의 하나이긴 했다. 사내는 아내의 살해동기를 찾기 위해 경제문제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져 가면서도 번듯한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한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사내의 소유이긴 했지만 집값의 반이 넘는 융자를 갚지 못한 상황에서 진정한 '내 것' 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융자를 갚기 위해선 뛰어난 능력을 보이거나 무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십대에도 보이지 못한 능력이 지금에 들어 불현듯 튀어나올 리도 없었고, 노력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다였다. 당금의 불경기 국면에서 그만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 곧장 그의 출판사는 요절이 나고 말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아찔하고 앞을 보아도 아찔했다. 노후를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말이 사장이지 때로는 생활비도 가져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직원들 월급도 이따금 체불하는 터에 사장만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 여동생의 남편은 삼십대 초반인데도 잘 나갔다. 그가 벌어 장만한 것은 아니겠지만 방배동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해두고 있었다. 여동생은 다섯 살 딸애의 교육비가 이백만원이 넘게 든다고 하소연했다. 아내는 사내가 매달 빠지지 않고 여동생의 교육비밖에 안 되는 돈만 갖다줘도 감지덕지할 것이었다. 비교하면 끝이 없었다. 아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내네 형편보다는 나았다. 아내는 투덜거렸다. "그깟 안 되는 출판사 당장 때려치우고 어디 취직자리나 알아보는 게 어때요?" 지당한 말이었다. 또한 불가능한 권유였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다들 안달인 판에 사내가 일할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내도 무척 답답하긴 할 것이었다. 사내의 무능과 역부족이 때론 죽이고 싶도록 환멸스럽기도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 아이의 아빠인데, 어찌어찌 이혼에 성사한다 해도 그녀와 아이의 주변을 돌며 죄도 없이 용서를 비는 구차한 꼴일 것임이 명약관하한데, 그런 터에 아내도 차마 사내를 내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내칠 수도 없고, 같이 살고 싶지도 않은, 진작 퇴출됐어야 할 무능한 사내. 아내는 그래서 사내를 죽이기로 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차마 그렇진 않으리라. 아내에게 극악한 바가 있긴 해도 물질적 불만을 이유로 살해를 결심할 만큼 치사하지는 않았다. 사내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내가 유도한 면이 없진 않지만 침실에서의 한심한 성적 능력, 월급쟁이보다 못한 사업소득으로 인해 빈한한 살림과 우울한 미래, 그런 문제들로 약간의 요인은 될 수 있었지만 주인(主因)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 사내는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전생이 있고 내생이 있다면 말야." 묻기 전에 먼저 독백하듯 읊조렸다. 다분히 유도를 목적한 대사였다. "나는 다음 생에서도 당신을 만났으면 해. 당신 너무 좋은 여자야. 당신보다 더 내게 잘 맞는 여자는 없을 거야." 무저항의 의지. 완벽한 투항의살르 밝힌 후 처분에 맡기겠다는 의도였다. 장치한 덫이 제법 교모하다는 자신을 하며 넌지시 물었다. "당신은 어때? 다음 생에서도……." 그러다 아차 싶었다. 아내는 평상시에는 적당히 융통성이 있다 싶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줏대 있는 샌님처럼 결연히 거짓 아닌 진정을 밝히곤 했다. 사내는 그가 사전에 밝힌 장치의 교묘함만 믿고 아내의 긍정만을 생각했지 부정이 있을 수도 있는 생각은 조금도 아니하였고, 아내가 거부했을 시의 파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싫어. 그러긴 싫어." "어?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데도 당신은 날 만나기 싫다는 말야? 정말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사내의 말은 일종의 경고이며 엄포였다. 곧 울기라도 할 것 같은 그의 말은 시위며 협박이었다. 까르르 웃으며 장난이었다고 말한 후 종전의 발언을 수정하라는 간청이었다. 설령 본뜻이 그렇다 하더라도 속셈은 감추고 사탕발림이라도 해서 부부간 세정을 도모하자는 통사정이었다. "그래. 날더러 다음 생에서까지 당신 만나 살란 말야? 당신이란 사람 실컷 경험했으니 내세에선 다른 남자 만나야지." "그래, 내가 싫다면 어떤 남자를 만나겠다는 말이야?" 아내는 그 거짓말이 번복할 수 없는 선언이나 맹세가 돼버릴 수도 있음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내생에서 행여라도 다시 사내를 만나게 될까봐 두렵기라도 한 양 처음 발언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사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연이어 그 충격보다 훨씬 강대한 지진이 그의 자존심들을 붕괴시켰다. "글쎄. 그때 가봐야 알지 뭐. 아무튼 당신은 아냐. 어떤 설문조사에서 여성의 칠십 퍼센트는 내세에서 현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했대. 내세에서도 다시 만나겠다고 한 여자는 극소수였다지 아마. 형편이 그런데 당신이 그 극소수의 선택을 받겠다는 거야?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기어이 나를 다시 만나려거든 좀더 노력해봐. 변혁을 일으켜봐. 지성이면 감천이라잖아. 하늘의 예정이 바뀌도록 말야." 치미는 서러움과 노염으로 사내는 아내와 더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사내와 아내는 그후 다시금 내세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았다. 아내는 결코 거부의사를 바꿀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전반기의 끝, 그러니까 사내가 살았던 삼십대 중반 무렵에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아내는 내세에 다시 사내를 만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로 여겼고 내세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계속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사내는 그렇게 여겼다. 그렇다면 과감히 탈혼하면 되지 굳이 살부의 꿈을 키워야 되었나 하는 의문이 남았다. 아내가 아파트와 그 동안 조금씩 저축한 통장을 독차지하고 친척의 강요로 들어둔 백수보험의 적지 않을 사망시 지급금을 노린 것이라 하면 그럴 법한 이유가 될 수도 있었으나 아내는 그렇게 저질이지는 않았다. 좀더 적절할 이유를 찾는다면 가끔씩 일어나곤 하는 배우자 살해사건들에서 근접한 유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떤 교수는 아내를 살해하고 대학 후배와 외국으로 도피했다. 어떤 작자는 곧 결혼할 약혼자를 살해하고 옛 애인과 종적을 감췄다. 후자의 경우, 작자는 살해에 따른 유산이나 다른 이득은 없어 보임에도 굳이 살인이라는 모두에게 위험한 수단을 택했다. 사랑의 흔적을 지우고, 어딘가 생존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원인을 투명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아내는 바로 그것 때문에 사내를 죽이려 한 것이었다. 아내의 살해 의지는 집요했고 기도는 교묘했다. 집요하고 교묘한 살인만큼 불행하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피살자의 입장에 섰을 때, 그 피살자의 가해자의 기도를 알아챘을 때, 일도필살의 순식간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언젠간 절명에 이르도록 찔끔찔금 가해되었을 때의 지겹고 곤고한 심경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납가루가 든 밥을 먹고, 수시로 홍합찌개를 삼키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참담함이라니. 차라리 아내의 첫 시도였던 목욕탕 난로 사건에서 결판이 났어야 했다. 홍합은 내분비 교란물질과 맹독에 오염된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어패류였다. 홍합이나 바지락 꼬막 새조개 등은 아내가 국이나 찌개를 끓이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재료들이었다. 사내는 얼마 전에야 어패류들이 중금속과 환경호르몬의 저장고나 마찬가지며 그것들의 영향으로 수컷의 성징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생태변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제야 손수 맛나게 국을 끓이고서는 아내가 늘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 이해됐다. 납 성분은 인체에 들어가면 배출되지 않는다. 사내는 베란다 창고에서 하얀 조흔이 그어진 사포 한 조각을 발견한 적이 있으며 더불어 공구가방 속의 땜납이 적쟎게 줄어든 사실도 알아냈다. 줄어든 땜납은 사포에 갈리었고, 잡곡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미량이 매일 사내가 먹을 밥에 뿌려졌던 것이었다. 사내는 아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는 면역이 되는 법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백신이 되어줄 수 없었고, 매일매일을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환경호르몬과 치명적인 중금속이 몸 안에 누적돼가고 몸의 기능들이 그만큼 활력을 잃어간다 해서 아내의 다른 전격적 살해기도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목욕탕 난로 사건만큼 무지막지하지는 않더라도 애교스러우면서도 간악하기 짝이 없는 시도들이 더러 발각되곤 했다. 언젠가의 일이었다. 사내가 거실에서 TV를 시청할 때면 늘 앉곤 하는 팔걸이 소파에 앉았을 때의 일이었다. 잠시 앉았다 엉덩이를 비틀었는데 뭔가 따끔한 것이 엉덩이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깜짝 놀라 직물 소파의 엉덩이 닿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냥 보아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사내는 여기저기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바늘 하나가 삐죽이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사내는 소리쳐 아내를 다그쳤다. "이게 뭐야? 바늘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뛰어왔다. "그게 왜 거기 박혀 있는 거죠?" "날 죽이려는 거야?" 지나가는 말처럼이긴 해도 사내는 그때 처음으로 막연한 위해의 두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아내는 바늘에 꿰인 실을 보고서는 낮에 이불을 꿰매던 것이라고 확인시켰지만 그게 왜 사내가 털썩 앉아야 할 소파 속에 죽창처럼 꽂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했다. 아이에게도 다그쳐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아이는 그럴싸한 알리바이까지 입증하고자 했다. 가족구성원 세 사람 중 둘은 세차게 부정했고 한 사람은 피해자였다. 사내가 자해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라면 바늘은 저 홀로 바람에 날아다니며 번식을 도모하는 민들레 홀씨나 버섯 같은 식물의 포자이어야 했지만 그날의 방 안에는 그를 운반시켜줄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사내는 소파에서도 침대에서도 몸을 날려 앉거나 누울 수가 없었다. 발 없는 바늘이 언제 대기하고 있다가 사내를 꼬치로 만들어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해 여름날에는 꼼짝없이 질식사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고단하여 깊은 잠에 들었는데 꿈에 어떤 낯모를 중늙은이가 나타나 이유없이 사내를 발로 걷어차는 것이었다. 사내가 눈을 떠 주변을 살펴보니 커다란 타일 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어느 지하철역이었고 그곳에서도 구석진 곳을 찾아 잠든 사내는 실직한 노숙자였던 모양이었다. 사내는 여전히 몸의 여기저기를 발로 걷어차는 중늙은이에게 결코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는 의사를 단호하게 표명했다. 그래도 중늙은이는 벙어리 인 양 말도 없이 걷어차기만을 계속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가 요절을 내야겠다 싶어 일어난 순간 그예 중늙은이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괘씸한 늙은이다 싶어 다시 누우려 하는데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 매캐해서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더 참을 수 없이 답답하여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으니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해 있었다. 모기향이었다. 아이 방에서 사용하는 훈증향도 아닌 스프링처럼 말린 싸구려 연소식 모기향이 이미 반 넘게 타들어가 방 안을 독한 연기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이었다. 사내는 아내에게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야말로 아내의 짓이 아니고선 설명될 수 없는 일이었다. "모기가 들어와 잠을 잘 수 있어야지요. 마침 훈증향도 다 떨어지고 없어 작년 휴가 때 샀던 모기향을 꺼내 피웠지요. 당신도 여러 방 물렸을걸요." "그럼 문을 열어두어야지. 나는 모기향과 함께 이 폐쇄된 공간에서 질식해야 하고, 당신은 아이 방으로 가서 자면 된다 이거야?" 아내는 결코 문을 열어두었다고 말했다. 창문으로 모기가 들어오지 않았나 싶어 창문을 닫긴 했지만 방문은 열어두었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었나?" 아내는 혼잣말을 지껄였다. 사내는 그녀의 태연한 극악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어야 했다. 삶을 낙관하는 자들은 사내의 하소연을 피해망상으로 치부하려 들 것이었지만 사내 입장이 돼보지 않고서는 얼마나 사태가 위중한지 모를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사내는 아버지가 남긴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빠르게 탈색해가는 흑백사진 한 장에서 눈에 익은 인물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60세 전후의 중년 신사가 어린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아이는 사내의 어릴 적 모습이었고 그 중년의 신사는 사내의 할아버지였다. 중풍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던 사내의 할아버지가 현몽하여 그를 질식사의 위기에서 구한 것이었다. 사내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내의 수많은 살해기도로부터 꿋꿋이 목숨을 부지함으로 다행으로 알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꼬락서니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가 왜 죽이려 하는지를 추리하는 것도 사내로선 지겨운 일이었다. 문제는 이제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살해기도가 단발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은 확실한데 언제까지 임기응변이나 행운에 의해 목숨을 부지햐 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고,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마냥 버텨낼 수도 없었다. 이제야말로 자진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어쩌면 아내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몰랐다. 어느 시점에서 사내는 아내의 살해동기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내가 모반을 괴할 정도로 잘못하였거나 모자란 자신의 단점들을 검색했다. 평소 아내가 혐오하였거나 조금이라도 싫어했던 자신의 오점들,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런 것들이 모여 커다란 스트레스를 이루어 한순간 그녀를 격앙케 했을 수도 있었다. 사내는 다시 집 안 평면도에 방치돼 있는 마우스포인터를 화장실 위로 끓어다놓고 클릭했다. 동화상이 움직이며 화장실의 여기저기를 비추다 문득 수건걸이에서 멈추어 섰다. 수건걸이. 의심해볼 만한 요소가 있었다. 아내도 정리정돈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사내의 수건 거는 버릇은 아주 못마땅해했다. "수건 좀 잘 걸어요. 왜 늘 구겨진 것을 그냥 거는 거야? 당신이 함부로 걸어놓은 것 펴서 다시 거는 것도 이제 귀찮아. 쓴 사람이 좍 펴서 걸면 좋잖아. 보기도 좋고, 마르기도 잘 마르고……." 아내의 지적이 여러 번 거듭되면서 사내는 수건을 쓴 후 수건걸이에 반듯이 펴 거는 버릇을 들이려 노력했지만 가끔씩은 아내의 주의를 망각하고 아무렇게나 걸어놓곤 했다. 그 점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지라도 감점요소이기는 충분할 듯 싶었다. 화면은 다시 세면기 위의 양칫물 바가지를 비추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결혼 초반에는 거의 모든 신혼부부가 그렇듯이 새로 장만한 양치질 세트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여 입을 헹궜다. 그러다 두어 번 거처를 옮기면서 컵은 사라지고 이 년 전쯤인가부터 구멍이 웅숭깊은 바가지로 양칫물을 받아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가 언젠가부터 아내는 부부가 같이 쓰던 바가지를 쓰지 않고 찬장에서 새 온더록스컵을 꺼내다 사용했고, 사내도 바가지가 눈에 띄지 않을 때는 투명하여 한결 청결해 보이는 그 컵을 입을 헹구기도 했다. 사내로서는 바가지든 청결해보이는 유리컵이든 양칫물 받아쓰는 용기라는 것 외에 다른 구별을 할 수는 없었고 더욱이 칫솔을 같이 쓰는 것도 아니고 양칫물 받아쓰는 용기를 부부지간에 네 것 내 것 분별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아내는 그것을 트집잡았다. 그도 아주 강력하게…… 쌍심지까지 돋우면서……. "왜 내 걸 써? 입 헹굴 때 당신이 쓰는 바가지 있잖아." 사내는 어이없어했다. 아내의 급습이 억울했다. "바가지가 없잖아. 내가 좀 쓰면 안 돼?" "안 돼. 당신 바가지 조오기 있네. 왜 찾아보지도 않고 내 걸 써? 드럽게시리." "뭐?" 조금 전까지 그들은 침대에서 섹스를 했었다. 분명 3분에서 4분에 걸쳐 키스하며 타액을 교환했다. 사내는 키스하지 않으면 섹스를 할 수 없었다. 혀를 통해 아내의 체온을 느기지 않으면 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컵 주둥이 좀 봐. 당신은 늘 저렇게 치약거품을 묻히고는 씻어놓질 않는다구." "씻으면 되잖아." "씻긴 뭘 씻어? 이 바가지 주둥이가 어떻게 돼 있나 봐?" 아내는 손수 바가지를 들어 주둥이를 보여주었다. 입술이 닿는 부분에는 하얗게 치약거품이 말라 있었다. 빨래삶기 전용 냄비에 비누거품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만든 얼룩처럼 청색 바가지에 결코 위생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얼룩들이 빙 둘러 굳건히 연대해 있었다. 사내는 미처 몰랐었다. 그렇더라도 사내는 아내의 내외 구분이 억울했고, 수긍하기 싫었다. 아니꼽고 치사해서라도 아내의 전용 양치컵을 다시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했지만 사내의 양치바가지는 종종 사라져 찾을 수 없을 때가 생겼다. 그럴 때는 하는 수 없이 아내의 컵을 사용했고 부러 컵 주둥이를 씻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다. 어김없이 아내는 더러워진 컵을 발견할 것이고, 못마땅해할 것이었지만 그것은 사내의 말없는 항변이었다. 한 이불 덮고 자기 수년, 서로 정액과 타액을 교환하는 부부 사이에 그깟 치약거품 정도를 감수하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시위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항변과 시위가 차차로 누적되어 원한이 됐을 수도 있었다. 원한? 치약거품 시위가 원한까지 산다는 건 너무 심한 비약이라 할 수 있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수건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양치컵을 지저분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남편을 죽이려 한 아내? 근사한 추론이긴 했지만 어딘가 함량이 부족했다. 잘만 하면 결정적인 동기를 집어낼 수 있을 듯도 싶었다. 그 원흉은 이제 근거리 용의선상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 교활한 놈은 쉽게 자수하려 들지는 않았다. 누구일까? 무엇이었을까? 왜였을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진동음이 울렸다. 퇴근하여 열쇠꾸러미와 함께 스피커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이 떨고 있었다. 사내는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선배? 저에요, 지희."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누군지 다 안다. 아내가 없길 다행이었다. 아내가 있었다면 코를 벌름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폴더를 닫았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 걸렸나봐' 라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하여 아내의 살의를 북돋울 것이었다. 집에 오면 늘 휴대폰을 꺼두는데 술에 취해 까먹은 모양이었다. "왜?" "말하는 게 뭐 그래? 거기 회사 아녜요?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이잖아. 어디서 만나지? 도서관 주차장?" "오늘 안 돼." "왜? 저번 달도 우리 못 만났잖아. 내가 싫어진 거야? 그럼 대체 언제 만난다는 거야?" 싫을 까닭이 없었다. 일 년 전 동창모임에서 만난 그녀는 사내의 주변머리로는 결코 가당찮은 행운이었다. 번역을 잘한다고 했고, 사내는 번역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녀에게 맡긴 번역이 채 끝나기 전에 사내는 술 취한 그녀와 정사에 성공했고, 그후 한 달에 한두 차례는 도서관 주차장에서 만나 사내의 차를 타고 가까운 여관을 찾아 후문 주차장의 길게 드리운 휘장을 걷었다. 거기서 그는 얼마 남지 않았을 잔여 용량에서 가불하여 요도의 구경이 혀용하는 한도껏 거세게 그리고 아낌없이 사정하려 애썼다. 사내가 그녀와의 만남에서 그녀를 진정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은 세번째 정사 후 그의 겨드랑이에 대고 그녀가 한 말을 들을 때였다. "뭔가 진짜 관계를 하는 기분이야. 우리 부부는 너무 싱겁게 하거든. 마치 비행기들이 공중 급유하는 것처럼 말야. 호호호……." 사내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겨드랑이는 간지러웠지만 심장은 뜨겁게 감동으로 용솟음쳤다. "당분간 만나지 못 해. 앞으로도 한동안…… 전화도 하지 마."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싫어졌어?" 사내는 비감해졌다. 죽음 앞에 사랑도 버려야 하는 자신이 너무 비루하여 울고 싶어졌다. 그는 자포자기했다. "내 목숨이 위태로워. 풍전등화야." "무슨 소리야. 뭐가 위태로워?" "그렇게만 알아둬. 난 살고 싶어. 더이상 너와 관계를 지속할 수가 없어." "애엄마가 우리 관계를 안 거야? 선배가 고백했어? 냄새를 맡은 거야? 그랬어?" "……냄새? 그래, 냄새야! 냄새였어!" 냄새였다. 사내는 지희의 말에서 단서를 잡은 것이었다. 사내는 마지막 대화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사내가 조용히 있자 그녀는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물러서야 할 상황임을 직감한 듯했다. 그녀는 더이상 전화하지 않을 것이었고, 사내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결정적인 동기는 냄새 사건에 있었다. 아내는 바로 그 때문에 사내를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사내의 하반기가 시작되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화장실의 난로 사건이 일어나기 두어 달 전쯤의 일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아내는 코를 킁킁거렸다. "여보, 우리 아파트 변기나 하수구가 잘못된 거 아냐?" "왜 또?" 아내는 새로 이사온 화장실에서 오줌 지린내가 난다고 했다. 사내는 악취라 할 만큼 심하다고 느끼지는 못한 터였지만 아내는 하수구를 통해 조금씩 악취가 역류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사내가 둔감하거나 아내가 예민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아내는 관리실의 영선공을 불러 상의를 해보았지만 그 역시 뾰족한 수를 내놓지는 못했다. 관리실 직원 역시 악취가 난다는 아내의 말에 전폭적인 공감을 하지는 않는 듯했고, 배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화장실의 타일과 콘크리트를 뜯어내는 큰 공사를 해야 하며 물론 공사에 드는 제 비용은 아파트 소유주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더이상 악취역류문제와 배관공사 건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사내는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변기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을 때 하수구쯤에서 울컥 악취가 풍겨 코를 자극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그 냄새는 사내의 직립 방뇨에서 튕겨나온 오줌방울들이 변기 주변에 붙어 풍기는 냄새와는 다른 것이었다. 오줌 냄새 얘기는 한동안 그들 부부에게서 꺼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사내는 퇴근하자마자 옷을 벗어젖히고 땀을 씻어내기 위해 화장실 샤워기 밑에 섰다. 비누질을 하고 샤워기를 틀 즈음에 아내가 급히 찾아온 용무를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와 변기에 앉았다가 문득 사내의 목욕하는 양을 보다가 무언가 괴이쩍은 사실을 발견했기라도 한 양 눈빛을 번득이며 다그쳤다. "자기 지금 오줌 누는 거야?' 폭포는 아니더라도 다른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압의 수돗물은 샤워기의 천공 다발을 통해 시원스레 사내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중의 일부는 정수리와 안면과 가슴과 배와 단전 등 경락의 임맥이 지나는 길을 따라 흐르다 사타구니의 음경에 이르러 노인의 오줌줄기처럼 힘없이 낙숫물로 떨어졌고, 그 낙숫물과는 달리 약간 앞으로 뻗어나가는 또다른 줄기의 물을 아내는 목격한 것이었다. "그래." 사내는 선선히 응답했다. "샤워할 때마다 거기 서서 누곤 했던 거야?" "음, 아마 그랬을걸?" 아내의 히스테리컬한 파열음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미쳤어! 당신이 범인이었잖아! 화장실에서 그동안 났던 오줌지린내의 범인이 당신이었어!" "무슨 소리야? 나는 이렇게 샤워하면서 샤워 물과 함께 누고, 그리고도 많은 물을 더 흘려보내기 때문에 내가 눈 오줌은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갈 거라구."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내가 오줌을 눈 후에는 머리를 감거나 몸의 비누거품을 씻기 위해 족히 한 말가량의 물을 붓는 꼴이 되기 때문에 앞서 눈 소변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내의 변명은 아내에게 조금도 들어먹히지 않았다. 아내의 지린내에 대한 추단은 완고했다.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갈 듯싶지? 0.01퍼센트 정도의 미세한 잔량만 남기고 다 흘러가서 냄새와 상관없을 것 같지? 그 0.01퍼센트의 미세 잔량이 문제란 말야. 그게 누적된다구. 울 엄마가 그랬어. 욕조건 다용도실 수챗구멍이건 단 한두 차례 실례하고 바가지 물을 퍼부어도 지린내가 나니까 유념하라고 말이지. 그런데 당신은 거의 매일 욕조에다 오줌을 눴으니 오죽했겠어!" 사내는 아내의 강변에 더이상 변명할 수가 없었다. 꼬리 내린 사내에게 아내는 아이게 하듯 또 그럴 거냐며 다그쳤고, 사내는 욕조에서 오줌 누는 버릇을 고치리라 다짐했다. 아내는 이튿날 하수구 세척용 염산용액을 두 통이나 사와 부었다. 염산액은 하수구에 엉겨붙은 암모니아 버캐들을 중화하고 용해하느라 부글부글 거품으로 끓어넘치는 등 아내의 과민한 후각을 만족시킬 듯 보였지만 불행하게도 지린내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는 그럴리가 없는데, 하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는 악취가 제거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린내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사내의 방뇨 버릇이 중단되지 않았기 대문이었다. 사내는 아내와 약속을 하고도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샤워할 때 자주 오줌을 누었고, 그것은 아내의 양치컵을 몰래 사용할 때처럼 반항이나 시위의 일환이 아니었다. 사내의 그 버릇은 이미 고질습관이 되어 있었다. 샤워기를 틀자마자 요의, 다시 말해 오줌을 누리라는 의도와 상관없이 방광은 개방되었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한 발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버릇을 고치고자 하는 사내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샤워하기 전에 변기에 미리 소변을 보면 되리라 싶어 그리 해보았지만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 직후엔 어김없이 요의가 찾아왔고 조금 전에 오줌을 누었는데도 소량의 오줌이 새로 방출되던 것이었다. 사내의 그 버릇은 중년 여인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요실금처럼 불가항력적인 악습이고 고 질병이었으며, 종래엔 다시금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분노에 찬 눈빛. 경멀 어린 차가운 시선. 아내는 알코올에 절었거나 어떤 정신병증이 깊은 구제불능의 금치산자 보듯 했다. 사내는 애써 아내에게 변명하고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 "너무 오래 젖어 있던 습관이어선지 잘 고쳐지지가 않아. 샤워 하기 전에 변기에 오줌을 눴는데도 샤워꼭지만 틀면 나도 모르게 또 오줌이 나온단 말이지. 나도 모르게 말야……." 사내는 변명을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내는 더욱 노여워했고 사내의 꼴만 비루해져버렸다. 아내에게 있어 그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사내일 뿐이었다. 그랬다. 그럴 것이었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사내를 남편으로 데리고 살아본 여자라면 능히 해량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살해동기이기에 충분하다. 벌레를 보는 듯하던 아내의 눈빛. 그것은 살기가 아니었다. 벌레를 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구충(驅蟲)이라고 하면 적합하다. 아내의 눈빛은 살충제를 뿌려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눈빛이었다. 그짓도 변변히 못 하는 주제에…… 돈도 잘 못 버는 주제에…… 그런 터수에 샤워꼭지만 틀면 저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고 만다고? 그만하면 충분히 죽을 짓이지 않겠는가. 사내는 회사에 전화했다. 여직원에게 오늘은 못 나가겠다고 하고 주말을 잘 보내라고 말해주었다. 사내는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켜 아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데웠다. 술로 뒤집힌 속은 음식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는 꾸역꾸역 음식들을 집어넣었다. 사내는 순명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진과 등가였다. 인간의 혼제가 위기에 처한 시절, 셋 중 하나는 혼인을 깨야 하는 시대였다. 사내는 아내의 살해 위협이 무섭다고 해서 탈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아이를 혼자 키울 수도 없었고, 아이와 헤어져 살기도 싫었다. 처자식과 헤어져 독거공간에서 소주나 죽이며 살 양이면 아내와 상의하여 원만한 타협점, 자살과 타살의 화해로운 계책을 찾는 게 나을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혼인을 모색해야 했지만 그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젊음을 바친 기왕의 혼인에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해 온갖 고통 속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는데,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혼인하여 어떤 치욕을 만나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내는 마침내 용단을 내렸다. 자진하는 것. 자신을 연소시키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유일한 살길이었다. 아내의 살해동기를 알아낸 터에 살길을 찾자고 나선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영악하고 의지 굳센 아내가 사내의 잔꾀를 용인할지 어떨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사내가 선택할 삶의 방편은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식사를 마치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아내의 손길이 닿지 못했던 구석구석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화장실의 타일벽과 세면기와 좌변기를 윤이 반질반질 나도록 닦았다. 이번에는 염산말고 묽은 수산액을 구해다 하수구에 붓고 오줌 버캐가 용해되면서 악취와 연기가 피어오르면 타일 바닥에 머리를 박고 경건하고 또한 처절하게 기원할 것이었다. 단 한 방울의 오줌도 변기 아닌 곳에 누출하지 않을리라! 단 한 방울의 오줌도……! 청소를 끝낸 사내는 서재로 가 니체 전집에 끼워둔 비장의 수표들을 꺼냈다. 거금 일백만원. 경리에게도 돈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지희와 여관 갈 일이 생기거나 그녀의 생일이 갑자기 다가왔을 때 쓰려고 숨겨둔 비상금이었다. 목숨을 보전키 위해 그녀와의 사랑도 유예시킨 터에 그것을 못 쓸 바 없었다. 백만원을 주머니에 넣고는 아내를 수소문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백화점에 데리고 가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고가 의류를 선물할 것이다. 조금은 남겨서 오는 길에 일식집에 들러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괜찮으리라.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지만 아내는 그 정도의 선물과 향응에도 쉽게 마음을 풀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사내의 수작에 코웃음을 치면서 '놀고 있군'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해 불과했다. 첫걸음이었다. 첫술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온 생을 걸고 줄기차게 시도할 것이었다. 결코 아내의 손에 살해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환심을 사겠다 해서 사랑을 복구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의 순간은 그 언제쯤인가 끝이 났다. 사내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 좋게 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내와 같은 형국일지도 몰랐다. 미운 정 고운 정? 핑계가 좋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 했다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를 위하여 살았었다고? 그 사랑의 증언자들에게 묻는다. 혹시 상대에게 위해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그토록 사랑한 것처럼 위장한 것은 아니었는지? 혹시 살해당할까 두려워……. 부부는 서로 살해되지 않기 위해 산다. 상상하면 끝이 없다. 살해될 이유도 있고, 살해 방법도 많고, 서로는 너무 많이 살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사내는 음식을 수발하던 종업원에게 팁으로 만원 한 장을 건넬 것이다. 부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두툼한 지갑을 꺼내들고 계산대 앞에 설 것이다. "얼맙니까?" "맛있게 드셨습니까? 23만원입니다." 사내는 지폐를 세다 말고 옆에 섰는 아내에게 귓속말을 시도한다. 아내는 처음엔 알아듣지 못한다. 사내는 다시 한번 속삭일 것이다. "당신을 너무 사랑해." 그날 밤 그들 부부는 의외의 선물과 외식에 의해 고무된 정신으로 잠자리에 임했다. 사내는 늘 해온 공중 급유는 이제 때려치울 심산이었다. 지구촌의 큰형님 국가로서 세계평화와 국제질서를 지키는 데 앞장서온 미국 국적의 폭격기가 되어 말썽 많은 깡패국가의 중요지점을 난타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었다. 정신을 모으면 못 이룰 어떤 일이 있을쏜가. 그는 그가 가진 폭탄과 연료를 모두 사용하고는 아내의 곁에 누웠다. 기진하긴 해으나 침대 위에서 그토록 의기양양해보기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힘 좀 썼더니 목이 타네. 냉장고에 맥주 있나?"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머리맡의 리모컨을 찾아서는 TV를 켰다. 아내는 가부장의 소청을 수행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옮기더니 팔을 뻗어 침대 밑을 더듬거리는 것이었다. TV에서는 막 토크쇼가 진행중이었고, 사내는 벌서 그들의 농담에 낄낄대느라 아내의 손이 침대 밑을 더듬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사내가 감춘 식칼을 찾아내 결연히 칼자루를 움켜쥐는 일련의 행동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서히 칼을 쥔 아내의 손이 침대 위로 부상했고, 그래, 칼은 제법 날카로워 보였다. + epilogue. 그렇다. 전적으로 칼자루를 쥔 건 아내였다. 서슬 푸른 그 칼날에 가슴을 찔리지 않고 살아남아 아내와의 백년해로에 성공했다면 아내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사내가 기울인 매일매일의 노력이야말로 참으로 눈물겨운 바가 있다 할 것이다. 일부일처 혼제를 꿋꿋이 지켜낸 그의 가증스런 공로를 그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기리리라. |
Gungnir
0
1,950,324
프로필 숨기기
신고
120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