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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gnir | 날짜 : 2014-05-10 01:56 | 조회 : 206 / 추천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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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공포] 콜드 스팟 (단편)
“나도 드디어 자취생이구만!”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13학번 새내기 여대생이다. 독립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지겨운 엄마의 잔소리와 지긋지긋한 아빠의 술냄새도 맡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원룸 1층은 도둑들에게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4층 꼭대기로 방을 구했다. 건물 바로 앞에 공원이 있어서 운동도 쉽게 할 수 있고 여러모로 지리가 좋아서 조금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덥석 계약해버렸다. 건물주아저씨의 입김도 작용을 했으리라 본다. “그나저나 이 많은 짐들을 어떻게 다 옮긴담.” “도와드릴까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였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반반한 괜찮은 남자였다. “여기사세요?” “네. 402호요.” “앗, 저 401호인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쪽으로 짐을 옮겨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농담이에요~ 아직 좀 춥죠?” “네. 그럭저럭 버틸만하네요.” 시답잖은 농담에도 내가 이렇게 배시시하고 웃을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외모가 중요하구나. 짐을 옮기면서 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같은 대학교의 선배였고 못질이나 무거운 것들을 옮길 때, 형광등 가는 것들은 꼭 혼자하지 말고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첫날부터 일이 술술 잘 풀려가고 좋은 인맥도 생기는 게 더욱더 대학생활이 기대된다. 무사히 이사를 마친 다음날에 친구 3명이 집들이라며 술과 안주거리들을 엄청나게 사들고 왔다. “내가 언제 집들이한데!” “그러면서 입은 왜 웃고 있냐?” “그러게.” 나는 그날 그녀들과 혼이 빠지도록 마시고 놀았다. 지나간 남자이야기, 앞으로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 옛 친구들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다보니 벌써 시계바늘이 새벽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 근데 우리 집 엄청 춥지 않아?” “이정도면 버틸만하지! 술을 덜 마셔서 그래 마셔마셔.” “보일러도 고장나있고, 내일 집주인한테 전화해봐야겠다.” 일어나보니 벌써 오후 1시였다. 도대체 얼마나 마시고 언제 뻗어버린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 속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술기운으로 더럽혀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방은 깨끗했다. 언제 그녀들이 왔다갔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와, 싹 치우고 나갔네. 제대로 뻗었었구나. 청소하는데도 안 깬거 보면…….” 일단 정신을 좀 차리기 위해서 샤워를 해야했다. “으앗, 차가워!” 보일러가 고장났다는 것을 깜빡하고는 그대로 샤워기의 물줄기를 나의 몸에 뿌려버렸다. 하는 수 없이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냥 살짝 정신만 차리려고 했는데 한겨울에 계곡물에 빠진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 “여보세요? 아저씨 여기 보일러가 고장났어요. 좀 고쳐주세요.” “어디? 아 401호? 알았어. 기사 불러놓을 게.” “네. 빨리 좀 부탁해요.” 내복을 입고, 패딩을 껴입고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도 추위는 사라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추운거야? ‘틱틱-’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틱틱-’ 창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돌맹이로 창문을 맞추는 듯한 소리, 아니면 손톱으로 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분명한건 우리집 창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였기에 조용히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내었다. “헉-!” 소리의 이유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커먼 형체가 가스관에 매달려 바로 아랫집의 3층 창문을 손으로 ‘틱틱-’하고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건 머리가 없었다. 깨어보니 새벽 3시였다. 그 물채를 목격하고선 그대로 기절해버렸나 보다. 그리고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다시 이불안으로 들어갔다. 분명히 보았다. 그 물체가 손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것과, 머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떻게 그 얇은 가스관에 매달려 있었던 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잠들어 버렸다. ‘딩동- 딩동-’ “문 열어!” 시끄러운 것을 보니 친구들이 놀러왔나 보다. 나는 그녀들에게 어젯밤의 기이한 형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야, 니가 새집에 이사와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거야. 신경쓰지마.” “정말 그런가…….” “그래, 보일러는 고쳤냐?” 그러고 보니 온다던 보일러기사가 오질 않는다. 아니면 주인아저씨가 부르지를 않았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귀찮으니 내일 다시 전화해야겠다. 그렇게 친구들은 진득하게 놀고는 이번엔 정리도 안하고 떠나버렸다. 한번 치워준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녀들이 사온 물건들이었으니 그러려니하고 청소를 하였다. 잠을 너무 많이 잔 탓인지 그날 밤에는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나는 컴퓨터를 켜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웹서핑을 했다. 내가 찾으려던 것을 찾으려다 이목을 끄는 기사제목 때문에 클릭을 해보고 다 읽고 난 뒤에는 내가 뭘 검색하려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웹서핑을 잘 안한다. ‘쨍그랑-’ 나는 갑자기 깨지는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투명 유리로 굳게 닫혀있는 부엌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저기에서 난 소리였어.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부엌에 가만히 서있다. 그 때의 그 머리 없는…? 무서움에 목에 경련이 일어나고, 이렇게도 추운데 땀이 흘렀다. 덕분에 보일러가 필요없구만.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친구가 그릇을 들고 서있었다. “야, 뭐야 너 언제 왔어?”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와 있었는데 기억안나? 나 밥 좀 먹는다고 했잖아. 그릇 깬건 미안해. 친구사이에 변상 따윈 필요없지?” 나는 다음날 옆집 남자에게 찾아갔다. 아무래도 이 집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웬일이에요? 뭐 도와드릴 거라도? “아뇨, 그게 아니라. 혹시 여기 얼마나 사셨어요?” “저 1년 정도요. 왜요?” “제가 오기 전의 401호 사람은 어땠어요?” “계속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시는데, 혹시 지박령이라고 아세요?” “네? 그게 무슨…….” “지박령은 인간을 크게 해하진 않습니다. 그냥 그곳을 지키는 수호령 정도로만 알고 계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지박령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면 힘을 잃게 마련이죠.” “무섭게 왜 그래요.” “그럼 이만, 제가 하던 일이 있어서.” 그리곤 남자는 문을 세게 쾅하고 닫아버렸다. 처음 이삿짐을 옮겨줄 때의 온화함은 어디로가고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것이 정이 확 떨어졌다. 지가 퇴마사라도 되는 거야 뭐야. 하지만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무서움이 더욱더 가중된 것은 사실이다. 보일러를 고치러 온다는 기사는 아직도 오지를 않는다. 나는 모든 불을 켰다. 이불 세장을 내 몸에 덮고 머리만 내민 채 구석에 틀어박혀 벌벌 떨고만 있다. 냉랭한 입김이 방안을 더욱더 차갑게 만드는 것만 같다. 내가 추워서 떠는 것만은 아니다. 아까부터 창문에서는 머리가 없는 검은 형체가 창문을 두드렸을 때 나던 소리가 우리 집 창문에서 들려오고,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계속해서 발자국 소리가 난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가 뒤섞여 공포 그 자체의 음산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어나봐!” 나도 모르게 공포에 지쳐 잠들고 말았나 보다. 이놈의 잠은 시도 때도 없다. 목소리에 깨보니 친구들이 집에 와있었다. “어, 응. 왔어?”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TV는 터졌는지 안에서 하얀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부엌의 그릇들은 전부 깨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고, 깨진 형광등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박령이야……. 옆집 남자가 지박령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어.” “그래? 혹시 콜드 스팟(Cold spot)이라고 알아?” “그게 뭔데……. 나 그런 시답잖은 질문에 답해줄 기분이 아니야.” 그녀들은 내말에는 대꾸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귀신들이 있을 때는 기온이 떨어져. 그래서 몸은 추워지고 숨을 뱉어 낼 때 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오지. 자신이 추워서 몸을 떨고 소름이 돋는지, 아니면 귀신 때문인지 모르는 곳. 그 곳이 콜드 스팟이야." "그래서. 여기가 콜드 스팟이라고?“ “너.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언제 사귀었던 친구인지 기억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얘들은 누구지? 나는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이사를 오고나서는 이상한 일투성이다. 너무 무서워 눈물조차 흐르지가 않는다. 나는 그럼 지금 지박령 앞에 서서 이렇게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살아야한다. 여기서 도망쳐야해. “모, 몰라!” 나는 곧장 그녀들을 밀쳐내고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내려와 무작정 달렸다. “불빛이 많은 곳! 불빛이 많은 곳으로 가야해.”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이 무서움을 아무도 달래줄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내가 계속 달려서 그런가. 이상하게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이 곧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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